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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올림픽이 선택한 스포츠, 올림픽이 밀어낸 스포츠

by 박이그린 2025. 4. 6.

세계 최고 스포츠 무대의 기준은 누가, 무엇으로 정하는가?

올림픽이 선택한 스포츠, 올림픽이 밀어낸 스포츠

 

1. 올림픽, 스포츠의 정점인가 기준인가?

근대 올림픽은 단순한 경기 대회를 넘어서, 특정 스포츠가 세계적 가치를 얻느냐를 가르는 결정적 무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각 종목의 국제적인 인지도, 조직력, 젊은 세대와의 친화성, 미디어 흥행성, 그리고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종목의 채택과 제외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채택된 스포츠는 ‘주류 스포츠’로 올라서는 계기를 맞이하고, 반면 탈락하거나 외면당한 종목은 '비주류'라는 꼬리표를 달고,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예컨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새롭게 채택된 BMX 레이싱, 2020 도쿄올림픽의 스케이트보드, 그리고 2024 파리올림픽에서 데뷔하는 브레이킹(Breaking)은 스트리트 기반 스포츠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 종목들은 청년 문화와 대중 트렌드에 부합하여 IOC가 올림픽의 젊은 이미지 제고와 글로벌 브랜드 재포지셔닝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선택되었다. 그러나 반면, 야구/소프트볼, 줄다리기, 크리켓, 스쿼시, 카바디 등의 종목은 지속적인 제외와 외면을 경험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특정 지역성, 시청률 부재, 혹은 정치적 무력함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지녔다는 점이다.

결국 올림픽이라는 무대는 스포츠의 절대적 기준이라기보다는, 글로벌 자본과 미디어 전략, 문화 트렌드, 정치 역학이 맞물려 움직이는 복합적 결정의 장이다. 이 속에서 스포츠는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서 세계적 상징성과 문화적 서사까지 포괄하는 존재로 재구성된다.

 

2. 선택된 스포츠: 글로벌화된 청년 스포츠의 힘

최근 IOC는 올림픽을 ‘늙은 무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스포츠를 채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올림픽의 브랜드를 현대화하고, 밀레니얼과 Z세대를 유입하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의 중심에는 바로 ‘스트리트 스포츠’와 ‘크리에이티브 스포츠’가 있다.

  • 스케이트보드는 단지 기술적 난이도뿐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성을 동반한 종목으로 2020 도쿄올림픽에서 데뷔하였다. 놀랍게도 13세의 일본 선수 니시야 모미지가 금메달을 수상하며, 스케이트보드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정식 스포츠로서의 위상을 갖췄음을 세계에 알렸다.
  • BMX 프리스타일은 기존 사이클링의 연장선이 아닌, 음악과 창의적인 동작이 어우러지는 퍼포먼스형 스포츠로서 자리 잡았다. 채택 당시 IOC는 “경쟁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 브레이킹(Breaking)은 2024 파리올림픽에서 정식 데뷔를 하였다. 이는 스트리트 댄스를 스포츠로 인정한 혁신적인 사례로, 힙합 문화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대표적 성공 케이스다.

이외에도 IOC는 e스포츠(eSports), 파쿠르, 서핑, 스포츠 클라이밍 등 신흥 종목들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올림픽의 구성과 철학을 더욱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3. 밀려난 스포츠: 전통과 지역성의 그림자

올림픽에 포함되지 못한 스포츠들은 단순히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종목이 특정 지역에서 강력한 인기를 구가하지만, 글로벌한 시청률 확보, IOC에 대한 정치적 로비력, 대규모 조직 인프라 부족 등의 이유로 제외된다. 이들 ‘비 선택된 스포츠’는 올림픽의 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야구/소프트볼은 전통적으로 미국, 일본,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지만, 유럽과 아프리카권에서는 저변이 얕아 ‘글로벌성 부족’으로 지적되어 2012 런던과 2016 리우에서는 빠졌다가 2020 도쿄에서 다시 복귀했으나 2024 파리에서는 또 제외되었다. 이러한 반복적 채택과 제외는 종목 자체의 역량이 아니라 개최국의 의지와 지역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 스쿼시는 국제 대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전 세계적으로 180개국 이상에서 플레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각적인 박진감 부족과 경기장 연출의 어려움으로 인해 번번이 제외되었다.
  • 크리켓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영국 등지에서 엄청난 팬덤을 보유한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한 경기당 3시간 이상 소요되는 경기 시간, 복잡한 룰, 제한된 지역성 등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T20 리그와 같은 짧은 포맷이 부상하면서 2028 LA 올림픽 채택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 줄다리기는 1900년부터 1920년까지 정식 종목이었지만, '현대적이지 않다'는 평가와 경기 규칙의 표준화 문제로 인해 제외되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전통 스포츠와 현대 스포츠 사이의 인식 격차를 반영하는 결정이었다.

이처럼 올림픽에서 제외된 종목들은 ‘경기력’보다는 ‘정치력’, ‘흥행성’, ‘미디어 친화도’라는 비경기적 요소로 인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이는 올림픽이 스포츠의 본질을 평가하기보다는 스포츠 산업화와 흥행 논리에 더욱 종속되었음을 보여준다.

 

4. 정치와 경제가 만드는 스포츠의 운명

올림픽 종목 결정은 단순히 IOC 내부의 투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배후에는 국가 간 외교력, 종목 연맹의 재정 구조, 방송 중계권 가치, 스폰서십 이슈 등 수많은 비공식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는 스포츠가 단순히 ‘경쟁’의 무대가 아니라, 국가의 브랜딩과 자본의 논리가 첨예하게 얽힌 장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 브레이킹의 채택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상징성, 젊은 세대의 디지털 콘텐츠 소비 행태, 그리고 다문화 사회의 포용성을 고려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 e스포츠는 아직 IOC 정식 종목은 아니지만, 국제 e스포츠 연맹,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등재, 그리고 글로벌 스폰서십 시장의 급성장을 바탕으로 미래의 올림픽 진입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 반면 롤러 더비, 카바디, 세팍타크로 같은 종목들은 강력한 지역성과 커뮤니티 기반을 지니고 있음에도, 중계 시스템, 국제대회 규모, 글로벌 연맹의 자금력 부족 등의 이유로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IOC의 기준은 "세계적인 인지도와 공정한 경쟁, 젠더 평등, 젊은 세대 친화성" 등을 공식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의 흐름과 미디어 가시성이 가장 큰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 결론: 올림픽 중심에서 벗어난 진짜 스포츠의 다양성

올림픽은 분명 스포츠계에서 최고의 무대 중 하나지만, 동시에 스포츠 다양성을 제한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도 있다. 어떤 스포츠가 선택되느냐에 따라 해당 종목은 미디어 노출, 정부 지원, 학교 교육, 민간 투자 등에서 막대한 차이를 겪는다. 올림픽에서 선택되지 못한 수많은 종목이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협받는 현실은 우리가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희망도 있다. 올림픽 외의 무대에서 비주류 스포츠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며 생태계를 넓혀가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인플루언서 기반 콘텐츠가 등장했고, 독립 리그와 커뮤니티 주도형 대회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특히 Z세대는 스포츠를 경쟁보다 자기표현과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하기에, 올림픽 여부와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를 즐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올림픽이라는 단일 기준이 아닌, 다양한 스포츠 가치와 문화를 포용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다. 국가와 교육기관, 언론, 기업은 더 이상 메달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와 공동체적 가치를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