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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비주류 스포츠 리그의 성장 전략: 커뮤니티에서 세계로

by 박이그린 2025. 4. 5.

비주류 스포츠 리그의 성장 전략: 커뮤니티에서 세계로

 

1. 커뮤니티 기반의 출발: 뿌리부터 단단하게

 

비주류 스포츠 리그의 탄생은 대개 거창한 후원이나 대중의 이목 속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들의 대부분은 지역 커뮤니티, 공원, 동호회 등 소규모 모임에서 생겨나며 자발적인 열정과 참여를 통해 점차 성장해 간다. 그러나 이러한 미약한 출발은 약점이 아니라, 탄탄한 공동체 기반의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출발점이 된다.

예를 들어, 여성 중심의 롤러 더비 리그는 상업적 후원 없이도 전 세계 수백 개 팀으로 확산되었다. 초기에는 지역의 체육관이나 학교 체육관을 빌려 경기를 열고, 선수들이 직접 심판과 스태프 역할을 분담하며 리그를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의 목표 의식, 자율성, 유대감은 단지 경기를 뛰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곧 커뮤니티 정체성과 스포츠 철학의 핵심이 되었고, 팬과 선수, 자원봉사자가 같은 선상에서 스포츠를 창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커뮤니티 중심의 스포츠는 단지 경기장 내 활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지역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낸다. 청소년 대상 무료 체육 교실, 사회적 소수자 대상 스포츠 캠프, 지역 자선활동과 연계한 이벤트 등은 비주류 스포츠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지역사회의 변화 주체로 작동하게 만든다. 이러한 모델은 참여자 중심의 ‘풀뿌리 스포츠 문화’로 자리 잡으며 장기적으로도 매우 탄탄한 팬층과 후속 세대를 양성하는 기반이 된다.

 

2. 정체성과 문화의 브랜딩 전략

주류 스포츠가 막대한 예산과 미디어 노출을 통해 팬덤을 유지하는 반면, 비주류 스포츠 리그는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팬들과 연결된다. 이는 흔히 ‘작지만 강력한 팬덤’, 즉 마이크로 팬베이스 전략으로 불리며, 특정 가치관, 철학, 서브컬처에 공감하는 이들을 결집시키는 방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퀴디치(Quidditch) 리그다. 해리포터에서 등장한 판타지 스포츠를 현실로 구현한 이 리그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 성별 다양성, 포용성, 평등한 경기 운영이라는 명확한 사회적 메시지를 내세우며 전 세계 40여 개국으로 확산되었다. 퀴디치는 모든 경기가 남녀 혼합 팀으로 운영되며, ‘젠더 맥스 룰(Gender Maximum Rule)’을 적용해 경기 중 특정 성별이 과도하게 출전하는 것을 제한한다. 이는 스포츠를 통해 다양성과 형평성을 실천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는다.

또한 퀴디치는 기존 스포츠에서 보기 드문 ‘커스텀 문화’를 장려하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선수들은 자신만의 유니폼, 팀 로고, 응원 도구를 제작하며 자유로운 창의성과 표현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왔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는 팬들에게 ‘나만의 스포츠’라는 소속감을 심어주며, 자신이 속한 스포츠 공동체에 더욱 깊이 몰입하도록 만든다.

더 나아가 일부 리그는 이를 기반으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화를 시도하고 있다. 굿즈 제작, 독립 출판물, 팟캐스트, 온라인 강좌, SNS 챌린지 등은 스포츠 자체를 넘어서 문화적 운동의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이는 비주류 스포츠가 생존을 넘어, 스스로 정체성 있는 브랜드로 진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3. 디지털 플랫폼과 글로벌 확산의 가속화

오늘날 비주류 스포츠의 가장 강력한 성장 동력 중 하나는 바로 디지털 미디어의 폭발적 활용이다.
이전에는 방송사와 계약을 맺지 않는 이상 대중에게 다가가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유튜브, 트위치, 틱톡,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스스로를 ‘방송국’처럼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사례로 플로어볼(Floorball)을 들 수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 시작된 이 실내 하키 종목은 처음에는 매우 제한된 지역에서만 알려졌지만, 경기 영상과 기술 영상, 심지어 심판 교육 영상까지 유튜브에 체계적으로 업로드하면서 유럽 전역은 물론, 아시아와 북미에도 팬층을 형성했다. 특히 짧고 강렬한 하이라이트 영상, VR 시점의 경기 분석 콘텐츠 등은 Z세대와 알파 세대의 이목을 끄는 데 크게 성공했다.

 

이러한 디지털 콘텐츠 전략은 단지 홍보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온라인 리그 개설, 실시간 채팅과 리액션 시스템, SNS 챌린지를 통한 팬 참여 유도 등은 비주류 스포츠가 전통 스포츠보다 오히려 더 빠르게 팬과 교감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크라우드 펀딩, 굿즈 마켓, NFT 기반의 선수 카드 발매 등은 디지털 커머스와의 융합도 가능하게 하며, 경제적 자립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처럼 디지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비주류 스포츠가 지리적, 자본적 한계를 넘어서는 생존과 성장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4. 대중문화와의 융합: 스포츠를 넘어 콘텐츠로

스포츠와 대중문화는 서로를 증폭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비주류 스포츠 리그는 이 점을 활용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콘텐츠화하고 서사화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사례 중 하나는 얼티밋 프리스비(Ultimate Frisbee)다. 이 스포츠는 ‘심판 없는 경기’라는 철학을 중심으로 자율성, 스포츠맨십,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며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왔다. 선수들은 경기 도중 스스로 반칙 여부를 판단하고, 논쟁이 생기면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스피릿 오브 더 게임(Spirit of the Game)’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됐고, TED 강연, 리더십 워크숍,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교육 콘텐츠로 확장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미·유럽의 주요 리그들은 얼티밋 프리스비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자체 제작하거나, 선수들의 삶과 커뮤니티 문화를 다룬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경기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팬들에게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게 하며, 스포츠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비주류 스포츠는 문화 콘텐츠와 융합하며 ‘운동 경기’를 넘어 정체성과 가치를 전파하는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

 

※ 결론: 새로운 스포츠 생태계, 비주류에서 시작되다

비주류 스포츠 리그의 성장은 단순한 확장이 아니다. 이것은 기존 스포츠 산업이 놓쳤던 철학, 정체성,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 중심이 아닌 참여 중심의 생태계, 소비 중심이 아닌 연대 중심의 팬덤, 성과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의 콘텐츠가 이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표준이다.

오늘날의 스포츠 시장은 점차 다양성과 수평적 구조를 요구하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비주류 스포츠는 더 이상 ‘주류로 편입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주도적으로 개척해 가는 창조적 생태계로 자리 잡고 있다.

비주류의 반격은 조용하지만 뚜렷하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앞으로의 스포츠 산업이 어떤 철학과 방향성을 갖춰야 할지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