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발점은 ‘비주류’, 그러나 매력은 충분하다
라크로스와 E스포츠는 태생부터 메인스트림 스포츠가 아니었다. 라크로스는 북미 원주민의 전통 경기에서 시작되었으며, 19세기 초반 캐나다에서 스포츠로 재정립되었다. 하지만 축구나 야구, 농구 같은 인기 종목에 비해 대중 인식과 접근성이 낮았고, 특정 지역이나 학교, 클럽 중심의 제한적인 환경에서 성장해 왔다.
반면, E스포츠는 1990년대 후반부터 PC방과 게임 대회 문화로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놀이’, ‘중독’ 등의 부정적인 인식에 갇혀 있었다. 특히 전통 스포츠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가짜 스포츠’라는 비판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 두 종목은 공통적으로 고유한 정체성과 몰입감, 그리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팬덤 형성이라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성과 산업성을 겸비한 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 팬덤의 힘: 커뮤니티 기반의 성장 전략
라크로스와 E스포츠 모두 팬 커뮤니티의 자생적 성장에 의존해 왔다. 이는 전통적인 인기 스포츠와 달리, 대규모 투자나 방송 중계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라크로스는 특히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 스포츠 리그(NCAA)**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팬층을 확보했으며, 특정 지역(예: 뉴욕, 볼티모어, 토론토 등)에서 클럽 중심 문화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Premier Lacrosse League(PLL)’와 같은 독립 리그가 등장하며 SNS와 유튜브를 통해 젊은 층을 겨냥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E스포츠는 팬 커뮤니티가 실질적으로 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게임별 포럼, 스트리밍 플랫폼(예: Twitch, YouTube Gaming), SNS 채널에서 팬들이 팀을 응원하고 선수와 실시간 소통한다. 특히 리그 오브 레전드(LoL), 카운터 스트라이크(CS:GO), 도타2(Dota 2) 등 글로벌 리그 중심의 이벤트가 팬덤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커뮤니티 기반의 전략은 비주류 스포츠가 팬과의 정서적 연결을 통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을 증명한다.
3. 미디어 전략: 직접 콘텐츠로 말하다
비주류 스포츠가 대중과 만나는 가장 강력한 창구는 ‘미디어’다. 그러나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미디어 전략은 전통 스포츠와 달랐다. 방송사 중계권을 쉽게 확보할 수 없기에,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라크로스의 경우, PLL은 NBC Sports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미국 전역에 경기를 중계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외에도 선수 개인 유튜브 채널,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 전략 해설 등 다양한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고 SNS에 적극 배포하고 있다. 이는 팬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경기 외적으로도 선수들의 매력을 알리는 데 큰 효과를 주었다.
E스포츠는 말할 것도 없이 디지털 콘텐츠의 선두 주자다. 리그 중계는 물론, 선수들의 일상 브이로그, 팀 다큐멘터리, 실시간 Q&A, 밈(meme) 영상 등이 SNS에서 활발히 유통된다. 심지어는 팬들이 직접 편집하고 만든 2차 창작 콘텐츠가 커뮤니티를 더욱 확장시킨다. 이 같은 참여형 미디어 구조는 라크로스에도 영감을 주었고, 두 종목 모두 콘텐츠 소비와 참여를 통한 생태계 활성화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4. 정체성 마케팅: '다름'을 브랜드화하다
라크로스와 E스포츠는 자신들이 '기존과 다르다'는 점을 약점이 아니라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삼았다. 이는 단순히 경기 방식이나 역사적 배경의 차별성을 넘어서, 라이프스타일로의 확장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라크로스는 전통적 유산을 강조함과 동시에, 빠르고 전략적인 경기 흐름, 젊은 이미지, 활기찬 팀 문화 등을 강조한다. 이는 PLL이 ‘경기 외적인 문화 콘텐츠’를 함께 제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PLL는 매 경기마다 관객과 선수 간 인터랙션 이벤트, 음악 공연, SNS 참여형 챌린지 등을 함께 운영하며 ‘경기장 밖의 경험’에 집중한다.
E스포츠는 게임을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디지털 세대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포지셔닝했다. 팀 로고, 선수 캐릭터, 커스터마이즈된 유니폼 등은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기능한다. 또한 글로벌 팬층을 겨냥한 이벤트, 굿즈, NFT 콘텐츠 등을 활용해 ‘참여의 브랜드화’를 시도하고 있다.
5. 제도적 인정과 국제화 노력
비주류 스포츠가 주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인정도 필수 요소다. 이 부분에서도 라크로스와 E스포츠는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라크로스는 2028년 LA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통해 글로벌 스포츠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는 국제 라크로스 연맹(World Lacrosse)이 꾸준히 추진해 온 규칙 표준화, 경기력 향상, 국가별 협회 설립 등의 결과다.
E스포츠도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지속적인 논의 대상이며,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국제 스포츠의 흐름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었다. 향후 올림픽 종목 채택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으며, 이를 위한 국제 E스포츠 연맹의 제도 정비와 글로벌 리그 표준화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
※ 결론: ‘비주류’는 전략이 된다
라크로스와 E스포츠는 분명 시작은 비주류였지만, 그 ‘다름’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점에서 강력한 유사성을 보인다. 이들은 팬과 직접 소통하고, 콘텐츠를 스스로 유통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제도화와 국제화의 문을 두드리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이 두 종목이 보여준 사례는 다른 비주류 스포츠에도 큰 교훈을 제공한다. 단순한 ‘유명세’나 ‘중계권 확보’가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확산 전략임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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