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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비주류 스포츠와 정신 건강: 회복과 힐링의 수단

by 박이그린 2025. 4. 10.

1. 정신 건강의 시대, 스포츠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21세기는 정신 건강의 시대라 불릴 만큼, 마음의 안녕이 중요한 시대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8명 중 1명은 정신 질환을 겪고 있으며, 그중 많은 이들이 불안장애, 우울증, 스트레스성 질환을 경험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정신 건강을 유지하거나 회복하기 위한 대안적 방법으로 ‘스포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주류 스포츠 중심의 경쟁적 구조와 성과주의는 때로 개인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주류 스포츠는 치유와 자율성,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정신 건강을 위한 대안적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비주류 스포츠가 정신 건강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살펴 보았다.

 

2. 경쟁보다 자율: 감정 해소의 공간으로서의 비주류 스포츠

비주류 스포츠는 경쟁에서 벗어난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제공한다. 서핑, 클라이밍, 롱보드 댄싱, 요가 같은 종목들은 기술이나 기록보다 개인의 감각, 리듬, 심리 상태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도심 속 클라이밍이나 파크 요가와 같은 형태는 '경쟁이 아닌 연결'을 가능케 하며, 마음속 억눌린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의 여성 전용 롱보드 커뮤니티인 ‘Girls Skate NZ’는 트릭 중심의 스케이팅이 아닌 감정 표현과 서포트 중심의 라이딩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이 커뮤니티는 불안, 우울, 사회적 위축을 경험하는 이들이 모여 서로를 응원하며 롱보드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되찾는 장이 된다.

심리학적으로도 이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과 '플로우(flow)' 경험을 강화해, 개인의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단순한 움직임 이상으로, 몸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연결되고,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 되는 것이다.

 

3. 고립된 마음을 잇는 다리: 비주류 스포츠의 공동체성

정신 건강에서 사회적 연결감은 치료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외로움은 우울증, 불안장애, 심지어는 치매 위험까지 높인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다. 이때 공동체 기반의 비주류 스포츠는 감정적으로 고립된 이들에게 연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영국에서는 정신 건강 회복을 위한 사회적 처방 프로그램 중 하나로 ‘GoodGym’ 같은 프로젝트가 운영되고 있다. 이는 달리기를 기반으로 한 비주류적 커뮤니티 스포츠인데, 참가자들이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예: 노인 안부 확인, 공원 정비 등)을 병행하면서 신체 활동과 연결감을 동시에 얻는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에게 “운동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같이 뛴다”는 감각을 심어주며, 지속적인 사회적 접촉을 통해 고립감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커뮤니티가 중심에 있는 비주류 스포츠는 ‘운동’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정서적 연대이며, 상호 치유의 네트워크다.

 

4. 트라우마 이후의 회복: 스포츠 테라피로서의 가능성

비주류 스포츠는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중증 우울증 등으로부터 회복하는 데 있어 주류 스포츠보다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회복 모델로 작동한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PTSD를 겪은 퇴역 군인들을 위해 운영되는 ‘Sierra Club Military Outdoors’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은 하이킹, 낚시, 카약, 백컨트리 트레킹 등 비교적 비경쟁적인 스포츠 활동을 통해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과 다시 마주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해당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퇴역군인은 "다른 치료 방식은 거부감이 있었지만, 산속에서의 하이킹은 나를 자연스럽게 치유로 이끌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러한 사례는 심리학적으로도 일관된 흐름을 보인다. 자연 기반의 비주류 스포츠는 감각 회복(sensory reintegration), 마음챙김(mindfulness), 자기 인식(self-awareness)을 동시에 증진시켜, 외상적 기억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

 

5. 경계 없는 공간: 정신적 자율성과 창조성의 해방구

비주류 스포츠의 또 다른 장점은 신체적 능력이나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방식대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강박적 성과주의로 인해 지친 현대인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해방감을 준다.

예를 들어, 일본 도쿄에서 시작된 ‘Urban Dance Skating’은 직장인부터 중년 여성,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는 롤러스케이트 문화다. 음악, 리듬, 동작을 통해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이 활동은 스트리트 컬처와 창의성이 만나는 접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자기 표현 중심의 스포츠는 창조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며, 억눌린 감정을 '움직임'이라는 언어로 해방시킨다.

이러한 경험은 심리학적으로도 창조적 자기 탐색(creative self-exploration)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우울증 치료 과정에서도 중요한 단계로 간주된다.

 

6. 치료의 확장: 전문가와 협력하는 비주류 스포츠 프로그램들

정신 건강 치료에 스포츠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이제 공공기관과 전문가 중심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단순한 취미나 여가 수준을 넘어서, 임상적으로 접근하는 프로젝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정신과 전문의들과 협력하여 운영되는 ‘Sport et Santé Mentale’(스포츠와 정신 건강)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롱보드, 클라이밍, 트램폴린, 필라테스 등 다양한 비주류 스포츠를 활용해, 경계성 인격장애나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신체와 감정의 일치 경험을 유도하고 있다. 의료진과 스포츠 코치가 함께 계획을 세우며 맞춤형 회복 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치료와 일상의 경계가 부드럽게 이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향후 정신 건강 관리에 있어 ‘운동 기반 통합 치료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비주류 스포츠와 정신 건강: 회복과 힐링의 수단

 

7. 한국의 변화: 힐링 스포츠로서의 가능성

국내에서도 비주류 스포츠가 정신 건강을 위한 힐링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2030 세대 중심으로 요가, 클라이밍, SUP(스탠드업 패들보드), 트레일 러닝 등의 비주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를 통한 ‘내면 회복’에 대한 니즈도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도와 강릉 일대에서 운영되는 서핑 테라피 프로그램은 심리 상담과 서핑을 접목해 참가자들의 자기 인식과 감정 조절 능력을 증진시키는 데 주력한다. 정신과 전문 상담사가 상주하며,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바다 위에서 자신만의 페이스로 파도를 타며 감정을 정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서울에서는 비주류 스포츠와 예술을 접목한 프로젝트 ‘몸, 마음, 움직임’이 예술 심리치료사와 함께 운영되며, 댄스, 리듬 체조, 몸놀림을 통한 감정 해소와 자기표현 활동이 병행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향후 공공 정신 건강 정책과 연결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 결론: 경쟁 너머, 회복의 문화로 가는 길

비주류 스포츠는 더 이상 단순한 ‘특이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경쟁과 성과 중심 사회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새로운 정신 건강 플랫폼이다. 스트레스 해소, 외상 치유, 공동체 연대, 감정 표현, 창의적 자율성 등 비주류 스포츠가 주는 정신적 혜택은 기존의 치료법이나 여가 활동이 채우지 못한 틈을 메우고 있다.

앞으로도 스포츠를 통해 회복과 힐링을 추구하는 움직임은 더욱 다양화되고 확장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비주류 스포츠라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변화의 파도가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