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ESG
최근 몇 년간 산업 전반에 걸쳐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라는 개념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는 단순한 윤리 경영을 넘어 기업과 조직이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를 고려해야 한다는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스포츠 산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특히 기존의 메가 이벤트 중심, 대규모 자본 중심의 스포츠 문화는 환경적 비용과 불평등 구조를 비판받으며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 가운데, 비교적 작은 규모이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비주류 스포츠는 ESG 원칙을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실험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ESG 관점에서 비주류 스포츠가 어떤 가능성과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스포츠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E –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스포츠 실천
환경 보호는 ESG의 가장 눈에 띄는 축입니다. 전통적인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막대한 전력 소비, 탄소 배출, 쓰레기 발생 등의 문제를 낳았습니다. 이에 반해 많은 비주류 스포츠 종목은 자연환경과의 공존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핑, 클라이밍, 트레일 러닝 같은 종목은 활동 그 자체가 자연과의 접촉을 전제로 하며, 참가자나 조직은 환경 보전을 위한 노력을 자발적으로 실천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의 환경 단체 ‘Surfers Against Sewage’가 주관하는 ‘Plastic Free Communities’ 캠페인입니다. 서핑 커뮤니티는 해변 정화 활동뿐 아니라, 대회를 기획할 때도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탄소 중립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또한 독일의 Bergwaldprojekt(산림 프로젝트)는 등산과 자연 보호를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이 직접 숲을 관리하고 생태계를 복원하는 활동을 진행합니다. 이처럼 비주류 스포츠는 자연 속에서 활동함으로써, 환경 감수성과 책임을 동시에 키워주는 교육적 플랫폼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S – 사회적 가치와 커뮤니티 연대
ESG의 두 번째 축인 ‘사회(Social)’는 다양성, 포용, 사회적 책임을 포함합니다. 비주류 스포츠는 이 측면에서 특히 강력한 가능성을 지닙니다. 전통 스포츠가 경쟁 중심, 엘리트 중심의 구조를 유지해온 반면, 비주류 스포츠는 자율성과 접근성,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포용성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롤러스케이팅, 파쿠르, BMX, 얼티미트 프리스비 같은 종목은 성별, 연령,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개방성을 강조합니다. 미국의 여성 중심 롤러 더비 리그 ‘Gotham Girls Roller Derby’는 LGBTQ+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며, 스포츠가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자율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스포츠가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청소년, 이민자, 취약 계층의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브라질의 ‘Favela Street’ 프로젝트는 슬럼 지역 청소년들이 스트리트 풋살을 통해 리더십과 공동체 의식을 배워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런 흐름은 스포츠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소셜 스포츠’의 글로벌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G – 투명한 지배구조와 커뮤니티 주도의 운영 방식
ESG의 마지막 축인 ‘지배구조(Governance)’는 조직의 투명성, 참여 구조, 윤리적 의사결정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대형 스포츠 연맹이나 협회는 종종 비민주적 운영, 부패 스캔들 등의 문제에 직면해 왔습니다. 그러나 비주류 스포츠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와 자율적 구조 덕분에 커뮤니티 중심의 투명한 운영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지역 기반의 클라이밍 짐, 롤러 더비 팀, 서핑 협회 등은 비영리 단체 또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됩니다. 참가자, 선수, 팬이 동시에 운영자 역할을 하며, 의사결정 과정도 공동체 내부에서 이뤄집니다. 이러한 구조는 책임 있는 운영뿐 아니라 공정한 자원 배분, 윤리적 판단을 가능케 합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 했습니다. 오픈 플랫폼을 통해 경비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커뮤니티 투표로 규칙이나 경기 방식을 결정하는 등, 진정한 팬 기반 거버넌스가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례 분석 – ESG를 실천하는 비주류 스포츠 현장들
앞서 언급한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실제 비주류 스포츠 현장에서 ESG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첫 번째 사례는 프랑스의 "Run Eco Team"입니다. 이 팀은 달리기와 환경보호를 결합한 플로깅(Plogging) 개념을 대중화시킨 조직으로, 달리는 동안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전개합니다. 특히 프랑스 파리, 리옹 등 주요 도시에서 진행된 이 캠페인은 지역 커뮤니티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SNS 해시태그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친환경적 실천이 운동 그 자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비주류 스포츠가 가진 강점입니다.
두 번째는 뉴질랜드의 “Surfing for Farmers”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정신 건강과 환경, 지역 커뮤니티라는 ESG 요소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습니다. 농부들이 계절적 스트레스와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 이 활동은, 서핑이라는 자연 친화적 스포츠를 통해 정신적 회복을 유도하고, 커뮤니티 구성원 간의 유대감을 강화합니다. 참가자들은 서핑을 배우는 동시에 해양 생태계에 대한 인식도 높이고 있으며, 이는 환경 보호 교육과도 연결됩니다.
세 번째는 영국의 "The Outsiders Project" 입니다. 이들은 홈리스, 난민, 정신 질환 경험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아웃도어 활동을 조직하는데, 하이킹, 캠핑, 산악자전거 등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비주류 스포츠를 활용해 사회적 통합과 자존감 회복이라는 ESG의 S 요소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펀딩과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커뮤니티 기반의 운영 모델은 G 항목에서도 의미 있는 지표를 제공합니다.
글로벌 스포츠 정책과 비주류 스포츠의 결합
이제는 정부와 국제기구, 기업들 역시 비주류 스포츠가 가진 ESG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발표한 '스포츠와 지속 가능성 전략'에서 지역 스포츠 조직과의 협업을 강조했고, 이 전략은 소규모 커뮤니티 기반의 스포츠, 특히 자연 친화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또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역시 2020년 이후 ‘올림픽 아젠다 2020+5’를 통해 지속 가능한 경기 운영, 환경 보호, 다양성과 포용 증진을 새로운 스포츠 정책의 핵심 기조로 삼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2024년 파리 올림픽은 역대 최초의 탄소 중립 올림픽을 목표로 삼았으며, 동시에 지역 커뮤니티 중심의 스포츠 인프라 확충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습니다. 이는 메가 이벤트 중심의 과거 올림픽들과 차별화된 접근으로, 소규모 커뮤니티 스포츠의 가치를 인정하는 흐름과 일치합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비주류 스포츠가 주류 스포츠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상호 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스포츠 기업의 ESG 전략과 비주류 스포츠의 협업
스포츠용품 및 장비 산업에서도 ESG와 비주류 스포츠의 만남이 두드러집니다.
파타고니아(Patagonia)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원래는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였지만, 그 철학과 실천은 환경운동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이들은 클라이밍, 서핑, 트레일 러닝 등 비주류 스포츠 커뮤니티와 협력하여 제품을 개발하고, 사용 수명을 연장하거나 재활용 가능한 제품 라인을 확대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출의 일정 부분을 환경 단체에 기부하거나,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자연보호 캠페인과 연계한 마케팅 전략을 펼칩니다. 이는 기업이 단순히 ESG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질적인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On Running 역시 ESG를 스포츠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브랜드는 러너들과 함께 플로깅 이벤트를 기획하고, 재생 가능한 소재를 활용한 운동화를 출시하며, 친환경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 구조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는 비주류 스포츠가 ESG를 실천하는 데 있어 브랜드 파트너로서도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 결론: 비주류 스포츠는 ESG 시대의 미래형 스포츠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비주류 스포츠는 단지 주류 스포츠의 대안이 아닌, 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정신에 가장 가까운 스포츠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전제로 한 종목 특성, 포용성과 커뮤니티 중심의 구조, 비영리 또는 협동조합 기반의 운영 방식 등은 ESG의 세 가지 축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또한 정부 정책, 스포츠 브랜드, 커뮤니티 운동 등 다양한 주체들이 ESG와 비주류 스포츠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확장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스포츠가 단지 경기를 넘어서 환경을 지키고, 사람을 연결하며, 공정한 구조를 실현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결국 비주류 스포츠는 ESG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미래형 스포츠입니다. 그것은 "작지만 단단한 변화"를 만드는 힘을 지녔고, 이제 그 변화는 스포츠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진짜 물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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