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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팍타크로: 동남아의 공중 무예, 세계를 향한 도약

by 박이그린 2025. 4. 5.

세팍타크로: 동남아의 공중 무예, 세계를 향한 도약

1. 세팍타크로의 기원: 전통 놀이에서 스포츠로

세팍타크로(Sepak Takraw)는 말레이어의 ‘세팍(Sepak, 차다)’과 태국어의 ‘타크로(Takraw, 공)’가 결합된 명칭으로, 동남아시아의 전통 놀이에서 유래한 공중 스포츠다. 수백 년 전, 농경사회에서 공동체 놀이의 하나로 행해졌던 세팍타크로는 대나무 공을 발로 차는 간단한 규칙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 단순한 놀이가 국가적 스포츠로 자리 잡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화를 겪었다. 1960년대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경기 규칙이 통일되고, 아시아 스포츠 연맹이 공식적인 경기 방식과 규정(3인제 경기, 정식 네트 사용 등)을 채택하면서 세팍타크로는 현대 스포츠로 탈바꿈했다. 이후 동남아시안 게임, 아시안 게임 등 국제 무대에 등장하면서 비로소 동남아의 ‘자존심’이 되었다.

세팍타크로의 이러한 성장 과정은 단지 스포츠의 발전이라기보다는, 전통문화가 시대에 맞게 생존하고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는 상징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 공중에서 펼쳐지는 무예: 세팍타크로의 경기 기술과 매력

세팍타크로는 발과 몸 전체를 이용해 공을 다루는 경기로, 배구처럼 네트를 사이에 두고 상대편 코트로 공을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손을 쓸 수 없고 오직 발, 무릎, 어깨, 머리 등으로만 공을 처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높은 기술성과 운동 능력을 요구한다.

세팍타크로의 꽃은 단연 ‘스파이크’ 기술이다. ‘롤링 스파이크’, ‘사이클링 킥’ 등은 선수들이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켜 내리꽂는 고난도 기술로, 한 편의 무술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이 때문에 세팍타크로는 종종 ‘공중 무예’, ‘스포츠 예술’로 불리며, 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경기에는 세 명의 선수가 참여하며, 서버(Toe Server), 세터(Feeder), 스파이커(Killer)라는 역할 분담이 뚜렷하다. 이는 축구, 배구, 무술의 요소가 혼합된 스포츠답게 전략과 팀워크가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고도의 집중력, 순발력, 체공력, 그리고 유연성이 요구되며, 경기가 펼쳐지는 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3. 전통을 넘어 자긍심으로: 동남아의 세팍타크로 열풍

세팍타크로는 동남아시아, 특히 태국과 말레이시아 국민에게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정체성과 자긍심이 녹아든 문화 자산이자, 국제 무대에서 자신들의 고유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먼저 태국을 예로 들면, 세팍타크로는 태국 왕실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전통 스포츠다. 태국 정부는 세팍타크로를 국가 전략 종목으로 지정하여 전국 학교 체육 시간에 정식으로 포함시키고 있으며, 청소년 선수 발굴을 위한 리그도 지역 단위로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다. 태국 스포츠청(SAT)은 세팍타크로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대표 훈련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엘리트 선수들은 군 복무 면제나 장학금 등의 혜택을 받는다.

이처럼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 지원은 태국이 세팍타크로 강국으로 자리 잡는 원동력이 되었다. 실제로 태국은 아시안 게임에서 거의 매번 금메달을 독점하고 있으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최다 우승국이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자존심을 걸고 경기하는 ‘상징적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 또한 세팍타크로의 뿌리가 깊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세팍라가(Sepakraga)’라는 이름의 전통 공놀이가 세팍타크로의 시초로 여겨지며, 이 역시 오랜 세월 공동체 놀이로 이어져 왔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세팍타크로 발전 로드맵’을 수립하여 유소년 리그 육성, 코치 양성, 국제 교류 확대 등을 추진 중이다. 국영 방송사에서는 정기적으로 세팍타크로 리그 경기를 중계하고 있으며, 유명 선수들이 방송 프로그램이나 교육 콘텐츠에 출연하는 사례도 많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 베트남, 라오스 등에서도 세팍타크로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역 축제에서는 세팍타크로 경기가 필수 프로그램으로 포함되고 있으며, 지방정부 차원에서 클럽 리그 운영과 장비 지원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이처럼 세팍타크로는 동남아 각국에서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자 세대를 잇는 문화적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전통이 현대적 스포츠의 형태로 계승되고 있으며, 이는 문화 보존과 스포츠 산업 발전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각국 간의 경기에서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 민족적 자존심과 국가 간 경쟁이 상징적으로 투영되며, 스포츠 외교의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4. 세계화의 도전: 새로운 관객, 새로운 미래

세팍타크로는 현재 국제세팍타크로연맹(ISTAF)을 중심으로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등지로의 보급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영상 기반 플랫폼을 통해 스파이크 장면이 ‘퍼포먼스 콘텐츠’로 인식되며 젊은 세대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 일, 인도, 이란 등 아시아 각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캐나다, 미국 등에서도 클럽팀이 설립되고, 아마추어 리그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선수권 대회, 클럽 월드컵, 대륙 간 친선 경기 등 다양한 국제 대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세팍타크로는 점차 글로벌 스포츠로서의 입지를 굳혀가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과제들도 분명하다. 대중 인지도 부족, 복잡한 규칙에 대한 진입 장벽, 인프라 부족 등은 세팍타크로가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기 위해 극복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이를 위해 각국 협회와 콘텐츠 산업의 협력이 요구된다. 스토리텔링 중심의 다큐멘터리, 해설 영상, 체험형 콘텐츠 등의 생산은 새로운 팬층 유입에 효과적일 수 있다.

 

※ 결론: 세팍타크로, 문화의 공중 도약을 꿈꾸다

세팍타크로는 단지 한 지역의 스포츠를 넘어서, 문화와 전통이 현대의 무대에서 살아 숨 쉬는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고난도 기술과 시각적 퍼포먼스는 물론, 공동체 문화와 민족 정체성이 깃든 스토리까지 담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스포츠다.

앞으로 세팍타크로는 전통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e스포츠와의 융합, 가상현실 기반의 체험형 콘텐츠, 국제 교류 프로그램 등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도구가 된다. 세팍타크로가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는 그날은 멀지 않았다.

이 공중 무예는 이제, 하늘로만이 아니라 세계로 도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