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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도심 속 트렌드, 파쿠르가 전 세계를 점령하는 이유

by 박이그린 2025. 4. 5.

1. 파쿠르의 대중화, 어디서 시작되었나?

과거 프랑스의 소도시 리스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도시를 달리고 뛰어넘던 행위가 어느새 전 세계 대도시의 거리, 공원, 심지어 건물 외벽 위까지 확산됐다. 파쿠르(Parkour)는 원래 프랑스군의 훈련법에서 영감을 받은 ‘효율적인 이동 기술’에서 출발했지만, 2000년대 이후 유튜브, 영화, 광고 등의 미디어 노출을 통해 급속도로 대중화된 스포츠가 되었다.

특히 2001년 영국의 다큐멘터리  Jump London , 이어서  Jump Britain 이 방영되면서 파쿠르는 단순한 도시 놀이나 거리 예술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후 영화  13구역(Banlieue 13),  007 카지노 로얄,  어쌔신 크리드시리즈 등에서 파쿠르 장면이 인상 깊게 등장하며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대중화의 핵심은 시각적 충격과 감각적 리듬감이다. 인간이 건물 외벽을 타고, 난간을 넘으며, 순식간에 지형을 파악해 몸을 투사하는 모습은 인간 능력의 극한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파쿠르는 장비나 코트 없이, 도시 그 자체를 무대로 삼는 유일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다.

도심 속 트렌드, 파쿠르가 전 세계를 점령하는 이유

 

2. SNS와 유튜브 시대, 파쿠르는 어떻게 소비되는가?

오늘날 파쿠르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가장 강력한 이유는 단연 소셜 미디어의 확산이다.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영상 등 짧고 인상적인 영상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환경은 파쿠르의 특성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빠른 속도, 높은 긴장감, 예측 불가능한 전개는 사용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특히 파쿠르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전통 스포츠와 달리 경기 규칙이나 채점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창의성과 스타일이 곧 실력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파쿠르는 Z세대, 알파 세대에게 매우 매력적인 콘텐츠다.
이는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젊은 세대의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유명 파쿠르 아티스트들의 영상은 수백만 뷰를 기록하며 국가, 인종, 언어의 장벽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파쿠르 그룹 'Moscow Movement', 프랑스의 'Yamakasi', 미국의 'Tempest Freerunning' 등이 전 세계 팬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영상은 글로벌 파쿠르 커뮤니티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3. 도시 공간의 재해석: 파쿠르가 공간을 점령하는 방식

파쿠르가 전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는 표현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파쿠르는 실제로 도시 공간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고 확장시키고 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장애물로 보이는 벽, 계단, 철책, 난간 등이 파쿠르 트레이서에게는 이동을 위한 수단이자 자유의 표현 도구다.

이는 도시를 단순한 생활 인프라가 아닌 놀이와 창의성의 무대로 재해석하는 문화적 전환이다. 건축, 도시계획, 공공디자인 분야에서도 파쿠르의 영향을 받아 ‘운동 친화적 도시 공간(parkour-friendly urban space)’을 고민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베를린,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은 파쿠르 전용 파크와 연습장을 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건축가들은 파쿠르를 고려한 디자인 철학을 도시 구조물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은 도시 공간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누구나 도시를 자유롭게 누비며, 공간을 개인의 리듬과 방식으로 해석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쿠르는 자본과 권력이 집중된 도시 공간에서의 **‘저항의 미학’**이자 자율성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4. 글로벌 스포츠화: 비공식에서 제도권으로

한때 불법 낙서나 스케이트보드처럼 비공식 거리문화로 여겨지던 파쿠르는 이제 국제적인 제도권 스포츠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2017년 국제체조연맹(FIG)은 파쿠르를 공식 종목으로 편입하며 국제 대회와 규칙 제정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스포츠화된 파쿠르와 예술로서의 파쿠르가 공존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는 지역별 파쿠르 연맹이 생겨나고 있으며, 정식 대회도 활발히 열리고 있다. 한국 역시 대한 파쿠르협회를 중심으로 아마추어 리그,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국제 교류 등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2024년에는 국제대회에서 파쿠르가 별도 종목으로 시범 운영되었으며, 향후 청소년 올림픽 및 정식 종목 채택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파쿠르의 성장 가능성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장기적인 스포츠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파쿠르를 군사 훈련, 경찰 체력 테스트, 재난 대응 교육 등 전문 분야로도 활용하고 있어 그 확장성은 더욱 크다.

 

※ 결론: 도시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언어, 파쿠르

파쿠르는 단순히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넘나드는 스릴 넘치는 동작의 연속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를 몸으로 읽고, 해석하고, 반응하는 새로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치는 계단, 철조망, 난간 위에서 파쿠르 트레이서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자기 존재를 증명한다.

이처럼 파쿠르는 운동과 예술, 표현과 철학, 그리고 공간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현대 도시 속에서 유일무이한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기성세대에게는 낯설고 위험해 보일지 몰라도, 디지털 원주민 세대에게 파쿠르는 자유, 개성,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의 메타포로 다가간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이제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 공공디자인, 도시 계획, 청소년 교육, 사회 참여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 하나만으로 세대 간의 시선을 바꾸고, 도시를 더 열려 있는 구조로 바꿔 가는 것이다.
파쿠르는 이렇게 전통적인 ‘경기’의 틀을 넘어, 사람과 도시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정의하는 도구이자 상징이 되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파쿠르는 벽을 넘고, 난간을 지나며, 각 도시만의 언어로 재해석되고 있다.
도시를 ‘운동장’이 아닌 ‘대화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파쿠르가 전 세계를 점령하는 진짜 이유다.